양자인간

Book/읽은 책들 2008. 12. 19. 21:54

양자인간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 박상준 옮김 / 출판사 동아출판사 / 1994-06-01

무언가 좀 심도 깊은 SF를 읽고 싶던 찰나. 헌책방을 좀 뒤졌고, 그때 <마이크로 결사대>와 그 외에 몇몇권에 책들과 함께 지를 수 있을 만한 온라인 헌책방이 있어서 구매했다. 제목만으로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 없어 보이고 얇은 책들부터 재빨리 해치우기 시작하고 선생님이 엊그제 주신 <시간 여행자>를 두고 고민 끝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난 어제 취중에도 이 책을 읽었고, 밤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 매우 피곤한 상태지만, 나의 유기적인 뇌는 매우 충만한 상태이다. ^^

로봇 앤드류는 안드로이드형 로봇은 아니고 가사전용 로봇으로 3명의 주인으로부터 매우 사랑받는다. 실제 주인이라고 느껴진 사람은 마틴가의 <작은아씨>가 적당할 듯 싶다. 그에게 로봇 모델 넘버가 아닌 실제 앤드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그 이후나 그 이전의 주인도 이 아가씨의 아버지나 아들, 손자였으니까.  어쨌든 이 앤드류는 조각을 하고 글을 쓰고 옷도 입고 급기야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결국에는 필멸을 택하게 되는데 자유와 권리라는 개념을 얻기 위해서 필멸을 택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였으며, 영원보다는 필멸을 택하겠다고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결국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은 자유추구가 아닐까?)

이 작품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자유와 권리의 획득 개념이 인간으로써 인정받는 최선의 수단이며, 이것은 종교가 개입되면 현재 기독교 교리 해석이 얼마나 오류의 소지가 생기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아담을 로봇으로 봤을 때, 유혹이라는 개념을 조각, 집필, 착의로 보고, 결국에 얻게 되는 선악과는 자유인데, 앤드류의 결말이 필멸을 택하며 만족하는 것으로 가정했을 때 과연 아담이 속했던 에덴이 낙원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물론 에덴밖의 세상이 행복한 환경이 아닐지라도 인간본성은 그게 올바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해주는 책이였다. 수녀님께서 미국에서 제주도로 파견받아 농장을 일구게 될 때 마음속에서 뭉클하는 무언가를 느꼈다는 것도 결국에는 이런 자유가 아니였을까?

@ 아, 이 책은 러시아의 76년 발표한 중편 <2백살을 맞은 사나이>를 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Posted by 랄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