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 한국편-02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최석태 저 | 아이세움 | 2001년 01월
유명한 화가라 이름이나 그림 정도는 대략 알고 있었으나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몰랐다. 예를들어 까마귀 나는 그림을 방에 걸어두었는데 그게 이중섭씨 작품인줄 몰랐고, 내가 아는 이중섭은 황소 그린 사람이고, 고딩때였는지 대딩때였는지의 박완서 작가의 수필에서 등장하는 고생하는 예술가였고, 제주도에 살았다는 정도. 이중섭씨는 부유한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미술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에 유학가서 부인을 만나서 결혼을 했고, 생존당시에는 평가를 높게 받았으나 여기저기 떼이고 불운이 많아 힘들 삶을 살다가 비운에 갔다고 함.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스승인 임용련을 만난 부분이였는데
임용련은
"서울에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중국 난징[南京]의 진링대학[金陵大學]을 거쳐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서는 시카고 미술학교와 예일대학교 미술과에서 수학,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부상으로 1년 동안의 유럽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파리에 유학하고 있던 서양화가 백남순(白南順)을 만나 결혼했다. 1930년 7월에 귀국하여 그해 10월 서화협회전람회에 〈풍경〉을 출품하고 11월에는 백남순과 함께 82점으로 부부 유화전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인 1931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이중섭 등의 후진을 길러냈다. 1937년 목시회전에 〈하고 何故〉·〈불상〉 등을, 1938년 양화동인전에 작품을 출품했으나 화단에서의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렸던 〈에르블레의 풍경〉(1930)에서는 짜임새 있는 구성에 후기인상주의적인 수법을 구사했고 귀국한 뒤에 그린 〈금강산〉(1940)에서는 동양화의 산수화와 같은 분위기와 맑은 색채감을 표현해냈다. 1950년 6·25전쟁 직후에 납북되었다."
이중섭씨도 그렇지만 스승이 더 극적인 삶을 살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난징에서 미국으로 간 까닭은 독립운동하다가 걸려서 그랬다고 써있으니.. 게다가 건너가서 예일대를 나온 것을 보니 더 황당했음. 이런 분을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으로 (이중섭이 떨어져서 간 학교에 임용련이 있었다고 함..) 만나게 된다. 납북은 이 글을 찾아보고 알게되었음. 놀라우신 분들이였네. 나중에 임용련 평전같은걸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