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083 길 : 신경림 기행시집
신경림 저 | 창비 | 2000년 10월
책들고 다니기 무거워서 빌린게 시집. 덧붙여 조정래님의 '아리랑'을 연독하고 있으니 다른 소설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못내 버거워진다. 그리하여 도서관에서 아리랑 3부인 7,8권을 빌리고 갑갑한 마음에 기행느낌의 시집을 하나 가방에 밀어넣었다. 기행느낌보다는 예상치못하게 탄압과 투쟁에 장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나에게 시라면 모윤숙 시인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더 애틋했기에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시한편 발췌.
덧, 줄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활자로 보니 마음이 웬지 서글펐다.
그림 - 신경림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배낭을 맨 채 시적시적
걸어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주막집도 들어가 보고
색시들 수놓는 골방문도 열어보고
대장간에서 풀무질도 해보고
그러다가 아예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떨까
옛사람의 그림 속에
갇혀버리면 어떨까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오늘의 그림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두드려도 발버둥쳐도
문도 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의 그림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배낭을 메고 밤차에 앉아
지구 밖으로 훌쩍
떨어져 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