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이외수/해냄/200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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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생애를 바쳐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부지기수지만
온 생애를 바쳐서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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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소유할 수는 없지만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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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달콤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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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절교선언이나 배신행위에 개의치 말라.
사랑은 그대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라톤에서의 골인지점은 정해져 있지만 사랑에서의 골인지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평생을 달려도 골인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그렇다. 사랑은 그대의 한평생을 아무 조건없이 희생하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면
 역시 진정한 사랑을 탐내기에는 자격미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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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상이 그대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그 대상은 영원한 내 꺼로 등재됩니다.비록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그대의 영혼 속에 함유되어 있습니다.
...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삶보다 많은 것들에 함유되는 삶이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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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은 책을

한번만 읽고 다 읽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활자의 마술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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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회상

밤 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애 언제 한 번
꿀벌들 날개짓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철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 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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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하늘에 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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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무한을 유한에 가두게 됩니다. 이것을 무한으로 되돌려 보내면 절로 아상의 벽이 깨뜨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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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일기

해마다 겨울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병이 깊어져

언제나 새벽녘에야 일기를 쓰게 됩니다.

오늘도 눈 내린 순백의 화면위에

사람이 그립다고

한 줄로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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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비추어본다면 저는 남의 여편네가 될 여자들에게 턱없는 기대를 걸었던 거지요.
천생배필은 따로 있는 겁니다.
희망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엄청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상대편도 가슴이 아플 겁니다.
때를 기다리다 보면 다시 만나는 수도 있지요.
집착할수록 비참해집니다.
실연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법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지금 시인이 될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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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그대에게 바치는 時

도시의 트럭들은 날마다 살해당한 감성의 낱말들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실어 나른다. 내가 사랑하는 낱말
들은 지명수배 상태로 지하실에 은둔해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예감 때문에 날마다 그대에게
엽서를 쓴다. 세월이 그림움을 매장할 수는 없다.

밤이면 선잠결에 그대가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소스라쳐 문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뜬눈으로
정박해 있는 도시 진눈깨비만 시린 눈썹을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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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의 안부 따위는 묻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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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동행도 없이 낯선 길을 걸어와 비로소 텅 빈 거울 속을 들여다보네.
돌아보면 부질없어라 가슴에 무성한 쐐기풀
날마다 허망하게 일력이 한 장씩 떨어지고 기다리는 사랑은 끝내 오지 않았네.
부질없는 희망과 이별하고 부질없는 절망과 조우하고
어느새 지천명 암울한 이마의 주름살만 동굴처럼 깊었네.
이미 내게서 멀어져간 이름들로 눈시울 적실 나이는 지났건만
빌어먹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이 가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새벽까지 불면으로 뒤척이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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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그리움의 거처

..

그리움은 더욱 선명하고 쓰라린 화석으로
시간의 지층 밑바닥에 부각되겠지요.
아직도
그대를
잊지 못했음
이라고 누군가에게 짤막한 교신이라도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하지만 지난날 내 곁을 떠나가버린 모든 이들의 주소는
이미 오래전에 망실되고 말았습니다.
가을날 그리움의 거처는 바람의 거처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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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보는 장소에서 악행을 저지르면 인간이 그를 벌하고
인간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악행을 저지르면 하늘이 그를 벌한다

Posted by 랄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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