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읽은 책들

내가 보는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디가 니까야"를 읽으며 생각한 인식과 수행

랄라님 2026. 9. 9. 18:21

디가 니까야를 읽었다.

읽은 책은 이중표 역해의 『정선 디가 니까야』다.

처음에는 경전이 길기도 하고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기도 해서 어디에 집중해서 읽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그런데 몇 편을 읽다 보니 경전마다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는 달라도 그 밑에 흐르는 붓다의 사고방식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책 내에 포함된 경전은 다음과 같다.

범망경
사문과경
꾸따단따경
뽓타빠다경
께왓다경
대인연경
대반열반경
대념처경
전륜성왕사자후경
태초경
청정경
씽갈라를 가르치신 경

이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범망경이었다.

범망경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세계관과 견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을 설명하는 경전처럼 보였는데, 읽으면서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세계관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관을 어느 순간 진리라고 붙잡는다.

부처는 단순히 "그 견해가 틀렸다"고 말하는 데서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견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라고 한다.

내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그 해석이 어떻게 하나의 견해가 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다.

그래서 범망경을 읽으면서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나는 왜 이것을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이후에 읽은 뽓타빠다경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뽓타빠다경에서는 인식과 지식의 관계, 선정의 단계 등을 이야기한다. 특히 인식이 먼저이고 지식은 그 인식에 의존해서 생긴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붓다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경험과 인식, 조건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디가 니까야를 읽으면서 붓다가 계속해서 "이것은 왜 생기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생각이 생겼다면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고, 어떤 견해가 생겼다면 그 견해를 만들어낸 조건을 보고, 어떤 행동이 일어났다면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본다.

단순히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대인연경에서는 이런 방식이 훨씬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의 현상을 독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서로 연결되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연기의 관점이다.

전륜성왕사자후경에서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볼 수 있었다. 사회의 변화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난, 욕망, 절도, 폭력 등이 서로 이어지면서 사회 전체의 모습이 변화해간다.

개인의 마음뿐 아니라 사회도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수행에 관한 부분은 생각보다 편하게 읽었다.

최근에 "람림, 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 개정판을 읽었는데, 수행에 대한 설명 가운데 서로 겹쳐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디가 니까야에서 선정과 수행에 관한 내용이 나왔을 때도 완전히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역시 이전에 강의와 책을 통해 접해본 부분이 있어서, 디가 니까야에서 선정과 관찰,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데 도움이 됐다.

특히 대념처경에 와서는 지금까지 경전에서 계속 등장했던 수행에 대한 이야기가 실제 수행 방법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다.

몸과 느낌, 마음과 법을 대상으로 직접 관찰하고, 일어남과 사라짐을 바라보는 수행.

앞에서 읽었던 경전들이 "무엇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설명했다면 대념처경에서는 그것을 직접 관찰해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순서에 따라서는 디가 니까야가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보고,
현상은 어떤 조건으로 생겨나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직접 관찰하는 수행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수행의 결과를 삶 속에서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씽갈라를 가르치신 경은 재가자인 나에게 특히 와닿았다.

부모와 자녀, 부부, 친구,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노동자 등 실제 생활에서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수행이라고 하면 선정이나 명상부터 떠올리기 쉬운데, 재가자의 삶에서는 가족과의 관계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돈과 직업도 있다.

씽갈라경에서는 그런 현실적인 삶을 수행과 따로 떼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게 한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경전 가운데서는 씽갈라경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태초경도 재미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우주의 생성과 인간 사회의 기원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창세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당시 인도 사회의 신분제와 브라만 중심의 세계관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

만약 같은 이야기를 다른 문화권에서 했다면 그 사회의 구조에 맞는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붓다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했다.

태어난 신분 자체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꾸따단따경에서는 제사와 희생의 문제를 통해 보시와 계행, 수행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고, 께왓다경에서는 신통을 보여주는 것보다 실제로 마음이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사문과경에서는 출가 수행의 과정을 계행에서 시작해 선정과 지혜, 해탈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었고, 대반열반경에서는 붓다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며 무상과 죽음, 법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청정경에서는 올바른 가르침과 수행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렇게 각각의 경전을 따로 놓고 보면 주제가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전체를 놓고 보면 묘하게 연결된다.

디가 니까야에는 태초경처럼 우주의 생성과 인간 사회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경이 있다.

범망경에서는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 인식으로부터 어떻게 관념과 견해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본다.

뽓타빠다경에서는 인식과 지식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대인연경에서는 존재와 현상을 조건의 관계로 바라본다.

대념처경에서는 그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수행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씽갈라경처럼 재가자가 실제 생활에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아주 큰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결국 나의 생활로 돌아온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에서 시작해서 인간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지나, 그 인식과 집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결국 가족과 친구를 어떻게 대하며 살아갈 것인가로 돌아온다.

그래서 디가 니까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책이었다.

우주와 인간 사회, 인간의 인식, 견해, 수행, 선정, 지혜, 죽음과 열반, 그리고 재가자의 생활까지 들어 있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계속 눈에 들어왔던 것은 붓다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생겨났는지를 본다.

어떤 생각이 생겼다면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고, 어떤 견해가 생겼다면 그 견해를 만들어낸 경험과 인식을 살펴보고, 어떤 행동이 있다면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본다.

그래서 디가 니까야를 읽고 나니 불교가 단순히 어떤 교리를 믿으라는 가르침이라기보다, 내가 세계를 인식하고 생각을 만들어내고 행동하는 과정 자체를 살펴보는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결국 질문은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왜 그것을 믿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그 생각과 행동은 어떤 조건에서 생겨났고,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가 된다.

태초경처럼 우주의 생성원리에서 시작해 씽갈라경처럼 재가자가 살아가야 할 방향까지.

디가 니까야는 그 사이에 인간의 인식과 관념, 수행과 지혜를 놓아둔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은 디가 니까야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우주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작해 인간의 인식과 수행을 거쳐, 결국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까지 이어지는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디가 니까야 전체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읽은 경들만으로도 붓다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선명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관점은 의외로 단순했다.

무언가를 그냥 믿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보고,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면 내가 왜 그것을 붙잡고 있는지를 보고,

그 결과 내가 어떤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

아마 디가 니까야를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을 질문도 이것일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