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읽은 책들

카를 융은 왜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을까

랄라님 2026. 5. 15. 22:07

프리메이슨 가문, 영매 같은 어머니, 죽은 자들을 위한 일곱 설교까지
"기억 꿈 사상"을 읽고 완전히 달라진 카를 융의 이미지


심리학자라고만 생각했던 카를 융은 왜 “죽은 자들이 찾아왔다”는 기록을 남겼을까.

그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을 읽다가
나는 단순한 학자가 아닌, 무의식의 샤먼을 본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심리학자의 자서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조부가 프리메이슨 핵심 인물이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융의 조부 이야기였다.
융의 조부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 프리메이슨 조직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을 보고 나니 융 사상 전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의 글에는:

상징
입문 의식
빛과 그림자
죽음과 재탄생
연금술
만다라

같은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지 조금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심리학이라는 언어를 쓰고 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서양 밀의 전통과 영지주의의 분위기가 흐르는 듯했다.


어머니와 융 모두 영매적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건 융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였다.

융은 어머니가 때때로 완전히 다른 인격처럼 느껴졌다고 기록한다.
마치 밤이 되면 다른 존재가 드러나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융 자신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강렬한 꿈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
상징 체험
내면 존재와의 대화
제2의 인격


같은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융은 단순한 심리학자가 아니라 영매나 샤먼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기록은 학문적 자서전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무의식이라는 심연 속으로 내려간 탐험 기록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융의 기록은 망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오래 숨겨져 있던 인간 정신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죽은 자들을 위한 일곱 설교를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다가 가장 강하게 꽂힌 부분은
<죽은 자들을 위한 일곱 설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죽은 자들이 찾아와 답을 요구하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써내려갔다는 이 글은 제목부터 강렬했다.

죽은 자들을 위한 일곱 설교

심리학자의 저작이라기보다 오래된 수도원의 금서나 밀교의 금서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도중 결국 번역본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황금 꽃의 비밀과 만다라도 찾아보게 되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황금꽃의 비밀 그림 만다라 이야기였다.
융은 이 책을 통해 동양 사상과 무의식의 연결을 발견했다고 한다.
특히 황금 꽃과 만다라 상징 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직접 관련 이미지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구조와 꽃처럼 피어나는 빛의 형태를 보고 있으면 왜 융이 만다라를 정신의 중심성과 연결했는지 조금은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단순 그림이 아니라 의식의 중심이 시각화된 지도 같았다.


625페이지 회고 부분의 문장이 특히 오래 남았다


특히 이 책 625페이지 회고 부분의 문장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대부분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영적으로 특별하다고 느껴졌던 사람들과의 경험이나 내가 직접 겪었던 일들, 그리고 내가 공부하며 생각해온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조롱이나 낮춰보는 시선인 경우가 많았다.
혹은 자신이 더 우월하게 알고 있다는 식의 태도를 느낄 때도 있었다.

왜 나는 그런 순간마다 강한 고독감과 이질감을 느꼈는지 이 회고 부분을 읽으며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을 때 더 깊어진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왜 나와 비슷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적었는지도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공부하고 찾아보는 분야 자체가 일반 사람들이 흔히 관심 가지는 범위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의식과 상징, 영성, 꿈, 인간 정신의 깊은 구조 같은 주제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융의 문장을 읽는데 이상할 정도로 공감이 되었다.


회고편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대부분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 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나의 고독은 어릴 적 꿈의 체험과 함께 시작되었고, 내가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할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중략 ....

우리가 비밀을 가지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지니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인생을 어떤 비개인적인 신성한 힘으로 가득 채운다. 이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중요한 것을 놓친 셈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는 마음 속으로 예상되는 일뿐만 아니라 그외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p625~626


교수직보다 자신의 이상향을 선택한 점도 큰 감동이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융이 안정적인 교수와 학자의 길만 따라간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내면 탐구와 학문적 성취를 위해 안전한 길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현실과 타협했을 수도 있는데 융은 자신의 이상과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삶은 단순한 학자의 인생이라기보다
진실을 찾기 위해 구로를 하는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프로이트와의 관계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놀랐던 건 융이
프로이드와 꽤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한때는 프로이트가 융을 후계자처럼 여겼다는 사실도 이번 자서전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무의식 해석
종교와 영성
인간 정신의 본질

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서게 된다.
어쩌면 그 분열 자체가 현대 심리학의 거대한 갈림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 꿈 사상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무의식의 심연을 고독하게 한 평생 탐험하고,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미지의 존재와 마주한 기록이었다.